연일 수주 낭보를 전하고 있는 조선업계가 지속적인 인력 유출로 시름하고 있다. 전체 종사자 수가 절반으로 줄어든 상황에서 한정된 인력을 둘러싼 대형 조선업체 간 신경전도 수면 위로 떠 오른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전향적인 대책없인 몰락한 일본 조선업계를 답습하게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5일 한국조선해양플랜트협회에 따르면 2014년 말 20만3441명에 이르던 국내 조선업계 전체 종사자 수는 지난해 말 9만2687명으로 감소했다. 극심한 수주 불황으로 신규 채용 규모가 줄어든 상황에서 정년을 채운 이들이 떠났다. 동시에 더 나은 처우와 도시에서 근무하겠다는 바람으로 전직을 택한 이들도 늘어났다. 현장 기능직뿐 아니라 기술·연구·관리직의 이탈도 심화됐다.
전문가들은 기술·연구·관리직의 이탈이 더욱 심각한 문제라고 입을 모은다. 차세대 선박 기술의 연구·개발(R&D)을 책임질 인재가 부족해지면 한국 조선산업의 경쟁력 후퇴가 불가피하다는 의미다. 한때 세계 조선산업을 주름잡다 한국에 추격을 허용한 뒤 급속도로 쇠퇴한 일본의 전철을 한국이 그대로 답습하는 모양새라며 더욱 우려하는 모습이다.
한 조선업계 관계자는 "일본은 한국·중국 등에 추월당한 뒤 수익성을 이유로 조선사 채용 규모가 점차 감소했고, 우수 인재들이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는 조선사를 외면하는 현상이 반복되면서 쇠퇴했다"면서 "대학들도 우수 인재의 지원이 끊기고 재학생 규모가 줄어들자 속속 폐과하기 시작하면서 일본 조선업계의 악순환이 고착화됐다"고 평가했다.
일본이 한국에 조선 패권을 넘겨준 시기는 1980년대 후반에서 1990년대 초반이다. 인재 육성의 산실이던 도쿄대가 1998년 학과명에서 '조선'을 떼고 환경해양공학과로 이름을 바꿨을 정도로 몰락의 속도는 빨랐다. 현재까지 명맥은 이어오고 있지만, 일본 조선업계의 신규 엔지니어 충원이 2010년 이후 사실상 중단된 상태라고 전해진다.
국내 조선업계의 현재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대학생 취업 희망 기업 상위권을 놓치지 않던 조선사들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순위권 밖으로 빠르게 밀려났다. 입시 시장에서도 관련 전공의 선호도가 낮아졌다. 최상위급 인재가 조선·해양 전공을 선택해 수학하면서 학·석사 학위를 받은 뒤 조선사에 입사하는 전통적 인력수급 구조가 약화된 상태다.
최근 삼성중공업·대우조선해양 등 4개 조선사가 인력 문제로 현대중공업그룹을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한 것도 이 같은 기조와 무관치 않다는 게 전문가 분석이다. 이들은 현대중공업그룹이 자사 인력에 직접 접촉해 이직을 제안하고 절차상 특혜를 제공하는 등 부당한 방식으로 인력을 유인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현대중공업 측은 통상적인 공개 채용 절차에 따라 모든 지원자가 동등한 조건으로 진행됐다며 맞서고 있다.
신동원 전 인하대 조선해양공학과 교수는 "조선업계가 극심한 인력난에 시달리게 된 것은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등 고부가가치 선박 수주량과 이중연료 추진선 등 친환경 선박의 수요가 가파르게 상승했기 때문"이라면서 "인력 유출은 계속됐지만 기술·연구·관리직 수요가 높은 선종의 수주가 크게 늘어나면서 조선업계도 버텨낼 여력이 사라진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신규 엔지니어 유입이 제한된 상황서 기술·연구·관리직 수요가 높아졌고, 관련 경력직 재직자들이 현대중공업그룹으로 이직하면서 삼성중공업·대우조선해양 등이 더욱 강하게 반발하게 된 것"이라면서 "근본적인 원인이 구조적 악순환이 원인인 만큼 이를 타개할 방법을 마련하기 위해 업계뿐 아니라 정부·산업은행 등이 머리를 맞대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 다른 업계 인사는 "현대중공업그룹은 조선업이 주축이어서 지속적 처우개선이 가능했지만, 삼성중공업·대우조선해양 사정은 달랐다"면서 "각각 그룹의 비주력 계열사라는 한계와 산업은행 등 채권단 관리 아래 있다는 이유로 적자를 메우는 데 급급해 중장기적 대응에 미흡했다"고 말했다.
이어 "2025년 일감 확보를 완료하고 2026년 건조하게 될 선박 수주에 나서고 있는 조선업계의 이번 호황이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면서 "정년 퇴직한 전문 엔지니어의 재취업을 도모해 당장 부족한 일손을 메우고 후진 양성에 힘쓰게 하며, 중·장기적으로 우수 인재를 적극 유치할 수 있는 다양한 대책 마련을 위해 정부·업계가 머리를 맞대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